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 (문단 편집) == 후폭풍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노무현 국민장 인파.jpg|width=100%]]}}}|| ----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기간 동안 지자체 운영 102곳과 민간 운영 233곳 총 335곳의 분향소가 설치되었고 2009년 5월 29일까지 장의위원회 추산으로 도합 500만 명이나 되는 조문객이 몰렸다. [[https://mois.go.kr/synap/skin/doc.html?fn=20090529190518486000.xls&rs=/synapFile/202206/&synapUrl=%2Fsynap%2Fskin%2Fdoc.html%3Ffn%3D20090529190518486000.xls%26rs%3D%2FsynapFile%2F202206%2F&synapMessage=%EC%A0%95%EC%83%81|지방 분향소 설치현황]]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9/0002031415?sid=102|#]][* [[박정희]]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의 조문객은 내무부 자체 보고에 의하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9110500209207010&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9-11-05&officeId=00020&pageNo=7&printNo=17872&publishType=00020|1769만 명이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ec&sid1=100&oid=079&aid=0002063717|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10%대의 낮은 지지율로 허덕이던 민주당은 순식간에 지지율이 28%로 급등하여 정당 지지율 1위를 기록하였고 한나라당은 24%를 기록하여 1위에서 2위로 내려앉았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79&aid=0002062617|시사in의 분석]]에 의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인해 일부 한나라당 지지층과 부동층, 진보 진영이 민주당 지지로 결집하였다고 한다. 여론조사 결과 60%의 국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이 이명박 정부의 정치보복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도 56%에 달했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q=51112|이 시기에 실시된 대선후보 여론조사]]에 의하면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수성구 을]]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후 대선후보 대열에도 끼지 못하던 [[유시민]]이 [[정동영]]을 꺾고 야권 대통령 선거 후보 지지율 1위의 대권 주자로 떠오르기도 하였다. 또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민주당(2008년)|민주당]] [[서울특별시장]] 예비 후보 적합도에서 친노 인사 3명([[유시민]], [[한명숙]], [[강금실]])이 1위 ~ 3위까지를 독차지했고, 이들 모두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서울시장]]을 가상대결에서 꺾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로는 [[강남3구]]의 전폭적인 지지로 다른 지역에서의 표 손실을 대거 상쇄하고 [[오세훈]] 후보가 당선되었다. 물론 시의회는 민주당이 다수였기 때문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민주당과 끝없이 대립하다가 그 갈등이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한번에 터져나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하기 이전까지 언급조차 되지도 않던 인물들이 갑작스럽게 유력한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등장하게 된 것은 '노무현 사망 후폭풍'의 영향력이 그만큼 엄청났다는 반증이다. [[http://m.khan.co.kr/view.html?artid=20090607111356A&code=910402&med_id=cp|민주당의 역학구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까웠거나 친노 진영의 지지를 받은 인사들의 위상이 급상승하고 비노로 분류되는 인사들은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는데 특히 비노 인사들로부터 맹공격을 받던 참여정부 산자부 장관 출신 [[정세균]] 전 [[민주당(2008년)|민주당]] 대표의 위상이 강화되었으며 노무현이 기용했던 [[이광재]], [[안희정]], [[김두관]] 등의 정치적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추모기간 동안 [[네이버]]와 [[다음]] 등에는 [[고(故)노무현 前대통령 추모웹툰]]([[http://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69113|링크]])이 올라왔으며 현재에도 만화 전문을 볼 수 있다. 사망 직후 각 지역에서 시국선언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얼마 후에 [[2009년 6.10 범국민대회]] 등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2010년 치러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우연찮게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1주기 추모식이 겹치는 바람에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ec&sid1=100&oid=277&aid=0002386930|친노 인사들을 전면에 내세운 민주당이 대승을 거두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지방선거 직전에는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명칭만 들어가면 여론조사 지지율이 5%~15%가 올라가는 현상이 발생해 [[노무현재단]]에는 하루에도 수십통씩 노무현 재단 관련 타이틀을 달고 싶다는 [[http://m.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7340|후보자들의 민원이 쏟아졌다고 한다]]. 특히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노무현의 최측근들이었던 [[안희정]]과 [[이광재]], [[김두관]] 등이 각각 [[충청남도지사]]와 [[강원도지사]], [[경상남도지사]] 등에 각각 당선되어 화제를 모았고 참여정부 행정관, 비서관 출신들이 대거 기초자치단체장에 당선되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의 여론조사 경선에선 후보의 경력에 '노무현' 문구만 들어가도 지지율이 20% 상승하여 비노계 후보들이 여론조사 문항에서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0/03/2015100302150.html|'노무현' 이름을 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도사를 낭독한 [[한명숙]] 전 총리는 큰 인기를 얻어 [[민주통합당]]의 당대표 자리까지 차지한 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진두지휘하기도 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은 비록 [[김용민(1974)/일생#s-5|김용민 막말 파문]]의 직격탄을 맞아 패하긴 하였으나 그래도 127석의 의석수를 확보하였는데 이 중 참여정부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훗날 더불어민주당의 주류를 형성했다. 정두언 전 의원은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이은 참패를 거듭하던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5&aid=0000650995|민주당을 되살아나게 한 원동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이라고 분석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에도 영향을 미쳐 2013년 10월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노무현이 박정희를 호감도에서 앞섰고 2016년에는 역대 호감도에서 박정희를 완전히 꺾었으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발발 직후에는 박정희의 호감도가 빠지면서 노무현의 호감도가 처음으로 50%로 상승했다. [[http://www.jeonguk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09|2017년 5월 여론조사]]에서는 54.2%의 호감도를 기록하여 20.6%의 호감도를 기록한 박정희를 누르고 1위를 기록하기도 하였으며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308&aid=0000021816|10월 여론조사]]에서도 1위를 기록하였다. 2019년 한국 갤럽에서 조사한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서 박정희를 4위로 제치고 3위를 기록하기도 하였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9/0005128454?sid=104|#]] 노무현의 죽음은 '''대한민국 정치사를 뒤바꿀 만큼 어마어마한 [[후폭풍]]'''을 몰고 왔다는 게 각계각층의 의견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호주국립대]] [[김형아]] 교수가 기고한 [[https://www.joongang.co.kr/article/21148919|논문]]에 의하면 기존의 '김대중 vs 박정희' 구도로 돌아가던 한국의 현대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기점으로 순식간에 '노무현 vs 박정희'의 구도로 변환되었다고 한다. *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469&aid=0000326378|김호기 연세대 교수도]] 현대 한국 사회를 이끌어 온 시대정신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꼽았고 그 상징이 박정희와 노무현이라고 정의하였다. * [[오마이뉴스]] 기자 손병관[* 나중에 [[박원순 성폭력 사건]]을 반박하는 서적 '비극의 탄생'을 쓰기도 했다.]은 저서 '노무현 트라우마'를 통해 이 사건에 대해 1950년 한국 전쟁,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이 정도까지 사람들의 의식에 지속적인 영향을 준 사건이 없었다고 평가하면서 노무현의 죽음 이후 정권이 세 번이나 바뀌었지만 한국 사회는 그의 죽음이 남긴 트라우마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하였다. * [[천정환]]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노무현은 죽음을 통해 비극적 영웅이 되었고 그의 자살로 인해 죄의식을 갖게 된 대중들은 노무현에 대한 우상화를 통해 자신들의 죄의식을 해소하고자 했으며 그로 인해 한국 사회에 극단적인 대립이 생겨났다고 분석했다.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05200300015#c2b|#]] * [[조선일보]] 논설위원 선우정[* [[소설가]] 겸 언론인인 [[선우휘]]의 아들이다.]은 노무현이 죽은 후 386 [[운동권]]이 그의 묘소가 있는 고향 마을을 민주성지이자 제단으로 탈바꿈시키고 매년 성대한 추모식을 통해 지지자들을 결집시킨다며 비판하였다. 선우정은 좌파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노무현을 가짜 신이자 우상으로 둔갑시켰다고 분석하며 노무현에 대한 우상화를 타파해야 후세대에 대한 악영향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2/06/01/RBO3XRQDWRBVDDRHO3UHVWJZQ4/|#]] * 노무현을 수사했던 [[이인규(법조인)|이인규 전 검사]]는 노무현의 죽음은 대한민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하며 당시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수사기록을 책으로 냈다고 밝혔다.[[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756852?sid=100|#]] * [[매일경제신문]] 기자 노원명은 노무현의 자살이 시민사회와 정치의 생태계를 바꿔 버렸고 그로 인해 진보정치에 국가는 사라지고 진영논리와 이익 비즈니스만이 남았다고 주장하였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9/0005134318?sid=110|#]] * [[시사저널]] 편집인 전영기[* [[중앙일보]] 편집국장 및 논설위원 출신으로, 이때부터 이미 확고한 보수성향으로 말이 많았다.]는 폐족에 몰린 친노 세력이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국민적 슬픔을 검찰에 대한 분노로 전환시켜 마침내 재집권에 성공하였다고 분석했으며 그러면서 노무현에게는 신화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그의 죽음을 신화에서 사실로 되돌려 놔야 한다고 주장했다.[[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59416|#]] * 언론인 [[조갑제]]는 노무현 사망 사건을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장면이라 평가하며 그로 인해 종북좌파세력이 되살아나고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 5년간 대한민국을 체제위기로 몰아넣었다고 주장했다.[[https://m.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2304100013|#]] * [[TV조선]]의 시사제작국장이자 앵커인 [[박정훈(기자)|박정훈]]은 노무현 14주기에 TV조선의 방송을 통해 노무현의 죽음이 사후 15년이 지나도록 논란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노무현이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성역화|성역으로 남겨져선]] 안된다며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https://youtu.be/gceSI_tPivw?si=cjBR4ha0qHb9lbA-|#]]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 청와대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문재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이전까지만 해도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고 본인도 정치에 나설 생각이 없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이후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순식간에 대권 주자로 발돋움하였다. 그리고 2012년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를 거쳐 2017년에 결국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유시민 작가는 [[썰전]]에서 문재인의 대통령 당선으로 노무현의 정치적 복권이 이루어졌다고 표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민주개혁세력을 결집시키고 [[친노]]란 멍에 때문에 일선에 나서지 못하는 인재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대로 함량 미달 정치인들이 노무현의 이름을 팔아 정계에 데뷔하거나 대중영합주의에만 혈안이 된 일부 정치인들이 자신의 인기를 높이기 위해 수시로 노무현 및 친노의 이름을 팔아대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다. 일례로 별다른 경력 없이 [[노무현재단]] 관련 타이틀만 가지고 선거에 나선다든지,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인 시절 잠깐 맡았던 명예직이나 한직 등을 크게 부풀려 말하거나 고인과 과거 인연이 있었음을 강조하며 관직, 국회의원직 등을 얻으려 하거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지지자들의 애정을 악용하여 자기들의 자리를 보전하는 데 써먹는 등 고인의 이름에 먹칠하는 정치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 [[친노]] - [[친문]] 진영의 특유의 배타성, 방어성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 참여정부 후반기부터 이어진 친노의 몰락과 이 사건으로 인해 친노 - 친문 진영은 노무현을 지키지 못했다는 큰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고 동시에 노무현을 비판하며 이른바 '내부 총질'을 한 인사 및 단체들에 대한 증오심을 가지게 된 것.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은 이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장 노무현의 적통이라고 불리는 문재인이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친노]]를 잇는 [[친문]]은 대한민국 정치에서 주류 중의 주류 계파가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귀향 연설에서 극찬했던 친노 핵심 인사로 분류되는 유시민 또한 정계에서 은퇴했으나 작가, 평론가, 방송인으로 두루 활약하고 있으며 '2017 대한민국에 영향을 끼친 인물'([[시사저널]] 조사) 3위에 선정되었다. 참여정부의 [[국무총리]]였던 [[이해찬]] 전 의원은 무려 7선에 성공하는 등 많은 [[나비 효과]]를 일으켰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한때 80%를 찍을 정도로 굉장히 높은 지지율을 선보였으며 [[더불어민주당]] 역시 중도좌파 성향의 정당치고는 엄청난 지지를 받은 것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은 정권이라는 명분이 어느 정도는 존재할 것이다. 문재인 다음 대선후보로 분류된 실질적으로 유력한 후보들 중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인사들이 많았다. 게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변호인(영화)|변호인]], [[노무현입니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등의 작품들이 화제가 되었다. 노무현에 대한 오마주가 영화 곳곳에 담긴[* 사실 더 많은 오마쥬가 있었으나 정치적 후폭풍을 고려하여 편집되었다고 한다.] [[광해, 왕이 된 남자]]도 문재인의 관람 후 모습[*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57&aid=0001121784|당시 영화를 관람한 후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고 한다]].]으로 인해 노무현과 함께 오르내렸고 [[더 킹(영화)|더 킹]]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 및 죽음이 영화의 터닝포인트로 작용하였다. 더 킹의 감독은 이 영화를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404&aid=0000165557|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하였다. 심지어 '노무현의 남자들이 여의도를 접수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참여정부에서 정책실장 등을 역임했던 [[김병준]]이 임명되었고 여당 대표로는 [[참여정부]]의 국무총리를 지냈던 이해찬이 당선되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문희상]]은 국회의장으로, 정무수석을 지냈던 [[유인태]]는 국회 사무총장으로 취임하였다. [[동아일보]]는 [[http://news.donga.com/home/3/all/20180718/91103125/1|'여의도를 넘어 한국정치 전반을 친노가 점령하는 모양새다'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또 [[이명박]]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와 그로 인한 여러 법조비리들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련성이 아주 없다고 할 수 없으며 적어도 여론조사를 통해 나타나는 과반의 여론이 [[적폐청산]]의 동력원이 된 이유가 [[이명박 정부]] 시절 노무현의 죽음과 관련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또한 이명박에게 거의 불리하게 해석되는데 '정치적 보복이 아니라 이명박이 저지른 범죄를 수사하는 것이다'와 동시에 '당신도 노무현을 무리하게 수사해서 죽음에 이르게 했으니 인과응보다'라는 주장이 병존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사건]] 당시 구속 찬성 지지율이 70%를 가볍게 넘겨 포토라인에 서기 직전에는 80%를 넘겼다는 것과 유죄 판결 이후 [[박근혜]]와 달리 사면 반대 여론이 60%를 넘겼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는 논리적 타당성을 떠나서 적어도 같은 대통령의 위치에 있었음에도 노무현의 죽음이 적어도 대통령 후임인 이명박을 수사하는 데 이 정도까지의 원동력이 되고 그 여론이 과반을 훨씬 넘는 지지를 받았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의 [[대검 중수부]] 폐지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020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 [[2022년]]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등 [[문재인 정부]]에서 강력하게 추진한 [[검찰개혁]] 법안들도 그 원류를 따라가 보면 결국 노무현의 죽음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노무현의 사후 회고록인 '운명이다'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이러한 제도 개혁 없이 검찰의 중립성을 보장하려 한 것은 나의 큰 잘못이었다. 퇴임 후 나와 내 동지들이 겪은 모욕은 이러한 잘못 때문'이라고 할 정도였으며 그 동지 중 최일선에 섰던 노무현의 검찰 조사 당시에도 같이 조사실에 들어갔던 사람이 [[문재인]]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이었으며 그 밖의 당시 동지들은 국회의원과 장관 등이 되었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이 교체되었고 검수완박에 대한 논란은 계속 이어졌지만 '''[[윤석열]], [[김건희]] 또한 2022년 봉하마을 추모행사에 직접 방문'''했다. 방문객 수의 감소로 어려움을 겪던 [[딴지일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정국 기간 관련 취재 및 특집보도를 대대적으로 실시하여 큰 주목을 받았고 이후 수많은 독자들이 몰려들면서[* [[딴지일보]]의 말에 의하면 매우 많은 독자들이 다양하게 몰려들었다고 전해졌다.]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김어준]]은 당시 딴지일보에 쇄도하는 네티즌들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유산으로 돌려 말하며 자신에게 축복이 될지 부채가 될지 모르겠다며 걱정하였으나 결국 딴지일보가 부흥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를 발판으로 '[[나는 꼼수다]]'라는 팟캐스트를 런칭하여 진보진영의 선봉장으로 활약했다.[* 다만 노무현이 죽기 전까지 딴지일보나 나꼼수 멤버들이 보였던 행적은 참여정부 내지는 노무현을 물어뜯던 당시의 진보층과 다를 게 없는 입장이기도 했다. [[주진우(1973)|주진우]]는 당시 시민사회수석인 [[문재인]]을 민경찬 사설펀드 건으로 집요하게 물고늘어져 전과를 만들어내고 사퇴시켰지만 결국 문재인은 무관한 일이 되어 직접 사과해야 했고 김어준과 김용민은 각자 사설로 노무현을 비난했던 전력이 있다. 딴지일보도 창간 때부터 B급의 명랑한 정치 풍자를 명목으로 [[https://img.theqoo.net/img/jyjvd.jpg|조롱]]을 일삼기도 했다. 의문의 서버 해킹 및 폭파로 인해 딴지의 과거로 접근할 길이 사라진 점은 이들의 이미지 세탁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꼼수다'의 대성공으로 정치 관련 팟캐스트의 전성시대가 열리면서 보수 우위의 종편방송과 맞서는 민주진보측 여론시장이 팟캐스트계에 형성되었다. 이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으로 계승되기까지 했다. 노무현 사후 설립된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은 무려 6만명이 넘는 후원회원과 전국 곳곳에 지역위원회를 가지고 있으며 전현직 유력 정치인들이 재단 이사장, 이사, 자문위원, 기획위원들을 맡고있는 막강한 정치재단이 되었다.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를 통해 현실 정치에까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생을 마감한 장소인 [[봉하마을]]은 [[http://www.gimha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351|김해시 최고의 인기 관광지가 되었다]]. 잔디공원과 생태문화공원이 들어서면서 정치색이 없는 일반 관광객들도 종종 찾는 명소가 되었고 [[민주당계 정당]] 소속 정치인이라면 필수적으로 들르는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다.[* 봉하마을 외에는 [[국립서울현충원]] 내 [[김대중]]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의 묘소, [[광주광역시]] 국립 [[5.18 민주화운동|5.18]] 민주묘지 등이 필수 방문지로 꼽힌다.] 보수 정당 정치인도 다양한 이유로 간간히 찾곤 한다. 한편 개인적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매우 아꼈던 [[김대중]]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 분향소에 가서 통곡할 정도였으며 추도사까지 준비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반대로 인해 추도사는 읽혀지지 못했다.]은 이 일로 인해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 2009년 8월 18일에 사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